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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 17:35

추억의 1991년식 현대 엑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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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첫차는 현대 엑셀이었다. 문 네 짝 달린 은빛 세단은 우리 가족의 첫 패밀리카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운전석에 앉아 이것저것 만져보며 신기해했다. 포니 엑셀의 뒤를 이어 1989년 등장한 엑셀의 인기는 굉장했다. 대우 르망, 기아 프라이드를 제치고 3년 연속 국산차 최다판매 기록을 세우는 등, 1994년 후속모델 엑센트에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수출 포함 140만 대 넘게 팔린 알짜배기였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의 기억을 끄집어보면, 당시 엑셀은 연령층 구분 없이 인기만점이었다. 그리고 20년 넘는 세월이 흘러, 다시 엑셀의 운전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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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자동차 애니메이션 <이니셜 D>에서, 타쿠미가 두부배달과 공도 레이싱용으로 탔던 AE86 스프린터 트레노. 그 차와 똑같이 생긴 녀석을 처음 본 건 어느 자동차동호회 행사장. 고성능 수퍼카와 클래식한 수입차들 사이에서, 녀석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르릉 쾅쾅 울려대는 배기사운드 컨테스트에서도, 예상치 못한 엑셀의 등장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단순히 20년 이상 나이 먹은 올드카의 복원 수준을 넘어, 자동차마니아들이 동경하는 AE86과 똑 닮은 외모와 시원한 질주성능을 암시하는 배기사운드가 눈길을 끌었다. 이쯤 되자 엑셀 튜닝카의 오너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니니라.

 

오, 이런! 어디서 봤던 얼굴이다 싶었는데, 유명인이 맞았다. 건담 프라모델 동호회 운영자와 RC카 고수로 명성 자자한, 치과원장 민봉기 씨가 맞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와 엑셀 튜닝카 사이의 접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운전을 좋아해서? 값비싼 스포츠카 말고, 감성적인 올드카를 타야 할 이유가 있나? 궁금증은 점점 커졌고, 차도 구경할 겸 결국 직접 찾아가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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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을 선택한 사연은 낭만적이었고, 차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민봉기 씨의 첫차는 엑셀 밴이었는데, 당시 지금의 부인과 함께 아름답고 값진 추억을 만드는 데 엑셀이 큰 도움을 줬기에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선택한 쉐보레 카마로 트랜스포머 에디션을 몰며 운전감각을 일깨운 적도 있었건만, 20년 전 아름다운 추억 속 엑셀을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결국 어렵게 수소문해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1991년식 3도어 엑셀을 구했다. 물론, 상태는 처참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고. 이후 2년 반 동안, 민봉기 씨는 퇴근 후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실력 좋다는 정비소를 수없이 찾아다니며 엑셀을 되살리기 위해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지금의 엑셀 튜닝카는 복원 수준을 넘어, 거의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새롭게 태어났다. 86엑셀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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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설명을 듣기보다는, 그가 지금까지 개인블로그에 올린 부활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는 게 훨씬 빨랐다. 장장 95회에 걸쳐 연재한 작업내용과 곁들인 사진의 양은 방대했다. 섀시, 엔진, 트랜스미션,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흡·배기, 파워 스티어링 휠, 버킷시트와 계기반 등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복원 및 보강작업이 이루어졌다. 없는 부품은 새롭게 만들었고, 실패와 성공을 숱하게 오갔다.

 

오랜 기간 프라모델과 RC카를 만지며 쌓은 손재주와 자동차밸런스에 대한 노하우 덕분에, 마침내 민봉기 씨 입맛에 맞는, 세상에 하나뿐인 엑셀 튜닝카가 탄생했다. 겉만 봐서는 몰랐지만, 붉게 물들인 실내를 차지한 레이싱 스티어링 휠과 각종 게이지에서 한 번, 보닛 열고 마주한 미쓰비시 4G63 엔진에 또 한 번 놀랐다. 터보차저만 달면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의 그것과 같은, 바로 그 엔진 말이다. 맞다. 이건 완벽한 레이싱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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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튜닝카를 만나봤는데도, 엑셀의 버킷시트 만큼 옴짝달싹 못 하게 껴안는 건 지금껏 없었다. 스페이서를 더해 가슴 앞으로 바짝 다가온 스티어링 휠, 민봉기 씨 체형에 맞게끔 각도 굽힌 기어레버가 그만큼 낯설 수 없었다. 동판 디스크 클러치 역시 다른 차보다 더 예민하게 굴어 쉽게 친해지기 어려웠다. 한껏 강성 높인 차체와 일체형 서스펜션의 만남은, 돌덩이처럼 단단한 승차감의 주역. RC카 매만지던 실력으로 캠버와 토우 각도 조율해 코너링 성능 또한 예리하게 다듬었다. 111마력에 불과한 휠마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쏠린 무게중심에 핸들링 감각은 이채로웠다. ABS? 주행모드? 그런 전자장비, 엑셀에겐 필요 없다. 차츰, 엑셀과 교감하기 시작했다. 점점 몸에 들어맞는 감각을 느끼는 동안, 녀석의 한계치가 궁금해졌다. 서킷에서 랩 타임 줄여가며 엑셀과 하나 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서킷 트랙데이에 만족하지 않고, 2015년부터 언더100 레이스에도 출전해 엑셀의 부활을 널리 알리고 있다는 민봉기 씨가 점점 더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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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마력에 달하는 고성능도 좋지만, 완성도 높은 균형감각 지닌 차가 더 매력적이다. 힘의 흐름을 온전히 느끼고 다룰 수 있을 때, 차의 순수한 기계적 매력에 흠뻑 빠진다. 20년 넘은 엑셀이 신명 나게 질주할 때, 우리가 느낀 즐거움 또한 순수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국산 올드카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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