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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의 자동차 페티시] 몇 년 전 일이었다. LA 선셋 대로를 걷던 중이었다. 선셋 대로라는 이름처럼 햇살이 찬란했다. 아스팔트에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뚫고 차 한 대가 나타났다. 당당한 자세로 널찍한 길을 유유히 활보했다. 클래식 머슬카였다. 1970년대까진 아니라도 1980년대 정도는 넘볼 수 있는 연륜이 보였다. 크롬 장식에 햇살이 부서졌다. 두꺼운 배기음이 귓가를 울렸다. 여유로웠다.

LA 선셋 대로에서 본 머슬카는, 모든 게 완벽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모습이었다. 초원의 야생마처럼 LA와 햇살, 머슬카는 맞아떨어졌다. 그제야 머슬카가 멋있어 보였다. 그 전까지 머슬카는 과잉의 상징처럼 보였다. 한껏 부풀린 근육 빼고는 모든 면에서 밀리는 차. 둔탁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다 뒤처지는 그런. 하지만 LA 도로를 퍼레이드하듯 지나가는 머슬카를 보자 다른 감정이 샘솟았다. 한껏 여유로움에서 기인한 박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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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머스탱 GT는 LA에서 만난 머슬카의 감흥을 재현한다. 5.0리터 V8 자연흡기 엔진이 많은 걸 말해준다. 머스탱 GT는 점점 배기량을 높여간 머슬카의 계보를 계승한 모델이다. 멋만 챙긴 게 아니라 ‘머슬’에 어울리는 근력까지 채운 셈이다. 다른 등급 머스탱은, 멋있긴 한데 탄산 빠진 맥주처럼 밍밍한 게 사실이었다. 물론, 5.0 모델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6세대 머스탱은 선이 굵다. 모든 선에 볼드 효과를 준 듯하다. 머슬카를 새롭게 정의하는 디자인 언어랄까. 과거 머슬카는 선이 굵다기보다 길었다. 길고 긴 선이 자동차를 경이롭게 보게 했다. 이젠 효율도 챙겨야 하는 시대다. 길이보다는 굵기로 그 효과를 대신한다. 갑옷을 두른 듯 두툼하다. 어쩌면 진짜 ‘머슬’을 키운 모습이려나. 대신 예전 모습은 비율로 구현했다. 여전히 아득하게 긴 보닛과 차진 엉덩이는 과거를 계승한다. 피는 못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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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탱 GT의 시동을 켜자 LA가 펼쳐졌다. 물론 머스탱 GT에 순간 이동 옵션이 있을 리 없다. LA 선셋 대로에서 귓가를 울린 풍성한 배기음이 들린 까닭이다. 두 소리가 같진 않을 거다.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때 느낀 그 감흥을 복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아득하게 긴 보닛을 지나 운전석에 앉으면 슬슬 차오른다. 배기음이 슬슬 고조시킨다. 가속페달 밟으면 풍성한 출력이 등을 밀어붙인다. 일련의 과정의 그날 그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차고 넘치듯 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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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탱 GT가 선사하는 박력은 풍요로움에서 출발한다. 고출력이라고 해도 표현하는 질감은 각기 다르다. 다르게 느껴진다. 차체와 하체, 외관의 인상이 혼합된다. 어떤 차는 날카롭게, 어떤 차는 효율적으로, 또 어떤 차는 민첩하게. 머스탱 GT에는 옛 정취가 담겼다. 5리터 V8 자연흡기 엔진은 순수하게 출력을 뽑아낸다. 터보 엔진과 달리 있는 그대로 숨을 들이켜고 토해내니까. 거대한 심장만큼 출력도 꾸준히 뿜어낸다. 그렇게 육중한 몸을 밀어붙인다.

게다가 머스탱 GT에는 6단 토크 컨버터 방식 자동 변속기를 쓴다. 듀얼클러치가 영리하게 동력을 전달하는 시대다. 9단 변속기처럼 단수를 촘촘하게 동력을 나눠 전달하기도 한다. 그런 시대에 6단으로 툭툭, 할 일을 한다. 이런저런 기술을 쓰기보다 묵직하게 힘을 전달한다. 둔탁할지라도 순수하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그 박력에 심취한다. 단지 직진만 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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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탱 GT를 타면 기준이 달라진다. 다른 고성능 차의 미덕이 떠오르진 않는다. 민첩하다거나 잘 맞물린 기계를 조종한다는 느낌이 적다. 아니, 그런 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려는 마음 자체가 사라진다. 그냥 5리터 V8 자연흡기 엔진의 흥취를 온몸으로 즐기고 싶어진다. 떡 벌어진 보닛을 앞세워 도로를 달려가는 그 장면 자체에 흥이 난다. LA 선셋 대로가 떠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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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부서지는 도로를 그냥 달리고픈 마음. 넘치는 출력을 넘치게 놔두고 싶은 여유. 그러다 가끔 가솔린을 태워 박력을 느끼고 싶은 욕구. 머스탱 GT에는, 그러니까 미국 차의 풍성함이 담겼다. 이성적인 잣대로 저울질하는 행위가 무의미해진다. 그냥 머스탱 GT를 느낄 뿐이다. 머스탱은 50여 년간 생존해왔다. 정밀한 유럽산 스프린터들이 침공할 때도 살아남았다. 기술이 닿지 못할 부분을 간직한 까닭이다. LA 선셋 대로에서 머슬카를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 감흥을 불러일으킨 머스탱 GT를 타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여유로움에서 기인한 박력은 점점 소멸하기에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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